옛 조상들은 漢文을 읽을 때 우리말 吐를 넣어 읽었다. 예컨대, '天地之間萬物之中唯人最貴'라는 문장은 '天地之間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하니'라 읽었다. 이와 같이 한문을 읽을 때에 한문의 構成要素 즉, 단어 또는 句節 사이에 들어가는 우리말을 가리켜 口訣이라 한다. 위의 '에, 이, 하니'가 이에 해당된다. 구결은 吐라고도 한다. 한문 문장에 우리말 吐를 다는 것은 '懸吐'라고 한다. 지금도 우리말이 懸吐된 한문 서적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漢學을 한 노인들이 구결을 달아 한문을 읽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말 구결을 달아 한문을 읽는 관습과 전통은 무척 오랜 것이다. 三國 時代부터 이미 이러한 讀法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구결의 역사는 매우 오랜 까닭에 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에도 여전히 漢字의 略體字를 이용하거나 省劃을 하여 우리말 구결을 달았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는 원리는 한자의 音과 訓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한자를 訓과 音으로 읽는다. '天'을 '하늘 천', '有'를 '있을 유' 등과 같이 읽는다. 따라서 국어의 '천'과 '유'를 표기하기 위하여 '天'과 '有'를 쓰기도 하지만, 이 두 한자는 국어의 '하늘'과 '있다'를 표기할 때에도 사용된다.
1973년 12월에 忠淸南道 瑞山郡 雲山面 胎封里에 소재한 文殊寺의 金銅如來坐像 腹藏物로 고려 시대 佛經 落張 5枚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실로 해방 이후 국어학계의 최대 발견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불경은 舊譯仁王經으로서, 經文을 새긴 木版에서 刷出한 것인데, 上卷의 2장.3장.11장.14장.15장 등 그 張次가 이어져 있지 않다. 불경의 원문 사이사이에 우리말 吐를 붓으로 써 넣었다. 그런데 종전의 것들과는 달리 구결토를 한문의 왼쪽과 오른쪽에 나누어 적은 점이 무엇보다도 특이하다. 종전의 구결은 한결같이 원문의 오른쪽에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舊譯仁王經 자료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첫째, 한문을 한문의 순서대로 읽지 않고 우리말 어순에 따라 재배열하여 읽었다는 점이요 둘째, 原文의 漢字를 때로는 우리말 訓으로 새겨 읽었다는 사실이다.
舊譯仁王經(上) 落張 5枚는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해 준다. 첫째, 漢字를 문장 안에서의 뜻으로 새겨 우리말 단어로 읽는 釋讀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문을 순서대로 읽지 않고 우리말 語順에 따라 재배열하여 읽는 사실이다. 이것을 가리켜 釋讀口訣이라 하는데, 현전 자료상으로 볼 때 釋讀口訣은 13세기까지 이어진다. 둘째, 釋讀口訣은 이미 三國時代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薛聰에 관한 {三國史記}의 기록 중 '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卷 46)은 이미 그 당시에 한문을 우리말 語順에 따라 吐를 달아 읽었음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은 羅末麗初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均如(923-973)의 저술 역시 원래 우리말 토를 단 것이었다. 13세기 중엽에 그 제자들에 의해 '削方言'하여 간행됨으로 말미암아 현재는 극히 단편적인 편린만이 남아 있다. 셋째, 일본에서의 한문 독법이 우리 나라로부터 전수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한문의 순서대로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吐에 해당하는 訓点이 표시된 漢字를 자국어로 읽고 있다. 그 동안 일본의 이 한문 訓讀法의 淵源이 미심쩍었는데, 舊譯仁王經 자료가 발견됨으로써 그 전파 과정이 밝혀지게 되었다. 8세기 경 일본의 승려들이 신라의 경주에서 華嚴經을 배워 간 일이 있는데, 그 때 한문 訓讀法이 전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口訣은 우리말 역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寶庫이다. 특히, 고려 시대 口訣 자료들은 국어사 연구에 절대 불가결한 존재이다. 훈민정음 이전 시기의 국어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자료의 빈약성으로 말미암아 진퇴유곡에 빠져 있었다. 借字表記 자료의 대부분은 人名.地名.官職名.鄕藥名 등의 고유명사 표기인데, 이들만으로는 국어의 참모습을 드러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국어는 교착어인 까닭에 조사나 어미와 같은 문법형태들이 매우 긴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고유명사 표기 자료들은 이들을 밝혀 내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鄕歌와 吏讀 자료들은 물꼬를 터준다 할 만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量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현전 향가를 모두 합하여도 양적인 면에서는 舊譯仁王經 석독구결 자료 한 점에 버금갈 정도이고, 고려말까지의 이두 자료 역시 각 시기별로 국어의 양상을 살피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다. 이와 달리 고려 시대 구결 자료들은 비교적 그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적힌 吐들은 문법 형태들을 잘 나타낸다. 그 중에는 15세기 국어의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형태들이 적잖다. 따라서 고려 시대 구결 자료들은 고려 시대의 문법을 재구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것이다.
舊譯仁王經의 발견은 구결 연구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국어학 연구자들 사이에 口訣을 비롯하여 鄕札, 吏讀 및 각종의 借字表記들을 정리하고 새로 인식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沈在箕 교수(서울대), 南豊鉉 교수(단국대), 故 崔範勳 교수(경기대, 동국대), 金斗燦 선생(율곡문화원장) 및 李丞宰 교수(가톨릭대) 등을 중심으로 차자표기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口訣硏究會를 1988년 2월에 발족하였다. 구결연구회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1박 2일 일정의 共同硏究會를 개최하여 왔다. 공동연구회에서의 質疑 및 討議는 매우 진지하게 진행된다. 1995년 5월부터는 學會로서의 체제를 갖추고 口訣學會로 명칭을 변경하였다.